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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며 듣기

by 고전음악연구소장 2020. 7. 29.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적지 않은 시간을 음악과 함께 해왔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대답하기에 쉽지 않은 질문인 것 같다.

 

화음의 진행을 설명할 수 있으면 그 작품을 이해한 것일까? 모티브들 간의 관계가 보인다면 이해한 것일까? 작품에 스며든 작곡가의 감정이 공감된다면? 악장들 간의 통일성이 보인다면? 형식을 도표로 그려내거나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만족할만한 답변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걸 할 수 있다면 그 작품을 이해한 것일까?ㅎ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가 했던 말이 굉장히 인상에 깊게 남는다. "처음 듣는 모든 음악은 나쁜 음악이다." 정확한 인용인지는 모르겠는데 대강 저런 말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얼마 전 봤던 문구도 생각이 난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입니다." 나보코프 문학 강의라는 책에서 나온 구절인데 음악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어조는 다르지만 솔티와 나보코프가 말한 것은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이해하고 있다.

 

어떤 작품을 처음 들을 땐 대개 그 작품을 듣기 위해 '견뎌야 하는' 기간이 있다. 각각의 부분들은 좋지만 곡 전체를 들을 때 한손에 잡히지 않는달까? 집중해서 들어보려 하지만 금새 지루해지고 작곡가가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싶고 감정적으로도 공감이 안 되는 그런 감상. 그런 시간을 참고 작품을 다시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서서히 멜로디가 머리 속에 들어오고, 작품의 진행에 깊이 공감하며 따라가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런 순간이 올 때, 내가 이제 그 작품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순간은 작품마다 다르게 찾아온다. 솔티는 처음 듣는 모든 음악이 나쁘다고 했지만, 내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처음 들을 때부터 '이해'가 된다고 느껴지는 작품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대개는 그 작품과 친해지기 위해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적게는 일주일 정도부터, 많게는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긴 시간에 걸쳐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봐도 도무지 와닿지 않는 작품들도 있기는 하다. 그런 경우엔 그냥 구석에 묵혀뒀다가 몇 년 있다가 다시 들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결국 친해진 작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도 있다.

 

그런 작품들에 속하는 것 중 대표가 말러의 몇몇 교향곡들이다. 말러는 너무 복잡해서 어렵다. 음들 하나하나를 너무 자세하게 쓴 것 같다. 그리고 심지어 그 디테일들이 서로 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어그러지며 제 3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서 머리로 따라가려고 하면 너무 어지럽고 금새 길을 잃게 된다. 그런데 그냥 곡의 감정선을 따라가려고 하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순간들이 있다. 2번의 5악장이라든지 7번의 2, 4악장 등이 그런 것 같다.

 

요즘 반복해서 듣고 있는 작품은 그 중 5번이다. 각각 다른 지휘자들의 해석을 비교해보며 반복해서 듣고 있는데도 5번은 내게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곡의 내러티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불길한 느낌을 주는 c# minor의 트럼펫 솔로로 시작한 곡이 어떻게 그런 환희에 넘치는 D major로 끝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그리고 중간악장들이 그 흐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것 같지도 않다. 아마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래서 아직까진 하나의 작품으로서 듣는다기 보단 네 개의 좋은 작품(1, 2악장의 연결성은 충분하다)을 연달아 듣는다는 느낌이다.

 

말러 5번의 명연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번스타인과 빈필의 DG 녹음

 

당분간은 5번에 집중해볼 생각이다. 이러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싶으면 또 다른 작품을 들으러 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