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이나 장대한 소나타처럼 거대한 규모의 곡을 들을 때 곡 전체의 구조와 구성을 파악하고 들을 수 있다면야 물론 무척이나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꼭 그렇게 해야만 곡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짤막한 멜로디 한 소절에 탄식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화음 하나가 저릿저릿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어찌보면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곡을 분석하느니 어쩌니 하는 것보다 그렇게 곡의 어느 한 부분에 꽂혀서 그곳을 반복해서 흥얼거리게 되는 것이 곡에 대한 진짜 이해의 시작일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게 말러 교향곡 5번이 그렇다. 곡 전체의 구성은 잘 모르겠지만, 듣다보면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동요하게 되는 구절들이 점점 더 생기고 있다. 현악기들의 피치카토를 들으며 몸이 절로 움츠러들기도 하고 호른의 독백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 중에서 특히 내게 와닿는 부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2악장 189마디부터 등장하는 첼로의 레치타티보이다. 팀파니의 잔잔한 트레몰로 위에서 부르는 첼로의 애가는 삶 가운데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모양의 고통(아마 청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때마다 다르게 들릴법한)에 대해 담담하게 읊조리는 듯 하다. 아무런 텍스트도 없지만 그 어떤 시나 가사보다도 더 절절하게 들린다.
말러는 늘 그렇듯이 여기서도 정성스레 이런저런 지시사항들을 써놓았다. 맨 위에 굵은 글자로 써놓은 'Langsam aber immer 2/2'(느리게, 그러나 항상 2/2로)은 이 부분 전체의 느낌을 지시하는데 2/2박자로 연주하면 느린 템포에서도 흐름이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는다. 덕분에 첼로는 지나치게 울기보다는 담담한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래서 오히려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첼로 악보 첫 마디 바로 위의 'zögernd'는 주저하듯이 연주하라는 뜻이다. 레치타티보를 시작하기를 망설이는 듯한 느낌. 마치 '이 얘기를 여기서 해도 될까'하며 고민하는 듯 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잠깐 쉬고 난 뒤에는 첼로는 다시 pp / klagend / am Griffbrett라는 세 가지 지시어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아주 여리게(pp) 탄식하듯이(klagend) 연주하라는 뜻이다. 'am Griffbrett'는 연주법에 대한 지시인데 활을 지판 쪽에 가깝게 해서 그으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뒷쪽엔 다시 주의를 환기시키듯이 'sempre pp ma espressivo'라는 지시어가 나오는데 계속해서 감정을 담아 여리게 연주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어서 204마디부터 등장하는 비올라가 이 처연한 레치타티보를 순식간에 따뜻한 위로로 바꾸어 놓는다. 첼로와 같이 레치타티보를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비올라의 C현 위 음들을 조용히 활로 긋기 시작했을 뿐인데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뀐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조용히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 같다. 말러가 노래하는 고통에 공감하다가 조용히 그 고통에 귀기울여주는 위로를 느낀다.
비올라가 등장하며 첼로의 악보 밑에 'allmählich fliessender'라는 새로운 지시어가 등장하는데 직역하면 '점점 더 흐르듯이'라는 뜻이다(본문에 첨부한 악보에는 없지만 좀더 뒤에 나온 판본에는 있다). 비올라가 와서 위로해주니 이제 더 이상 주저하거나 비탄에 잠겨있지 말고 앞으로 가라는 것처럼 들린다. 앞에서처럼 뒤에도 'sempre pp', 즉 계속해서 아주 여리게 연주하라는 지시어가 나오지면 여기에서의 pp는 비올라가 등장하기 전, 첼로가 독백할 때의 pp와는 사뭇 다르다.
별 움직임도 없이 하나의 현 위에서 조용히 미끄러져 내려가는 비올라의 음들만으로 이러한 분위기의 전환을 이루어낸 말러의 솜씨가 대단하다. 첨부한 유튜브 영상은 악보의 해당부분부터 연주된다. 워낙 조용한 부분이라 스피커 볼륨을 작게 해놓았다면 잘 들리지 않을 것이다. 볼륨을 약간 키우고, 즐감하시길.